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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주보기

아주 추운 곳에 가서야만 쉴 수 있는 사람/ 김사월

by 6ㅤ 2020. 5. 19.

아무것도 명쾌하지 않고
모든 것이 명쾌하다
눈보라에 날리는 마을과
아직도 초록인 이파리
넓게 펼쳐진 밭과 높은 나무들
회색이 섞인 하늘색 구름과
구름에 묻은 햇살의 부드러움 강한 눈
모든 것이 명쾌하지 않다
내 몸에 담긴 정신과 이 곳에서
뭔가를 얻고 싶었던 알량한 욕망과
사랑이 필요하지 않은 나 자신과
어디를 보아도 머리 속으로
도시를 보고 있는 나의 눈알
해는 생각보다 일찍 질 것이다
나는 겨우 하루를 보냈다
마음 속의 사랑
쓸모없어진다면 폐기될 생명
이유가 없는 방황 가속도가
붙은 방황 너무나 고요한 방황
이곳은 사실 바람으로
이루어진 곳인 걸
나만 모르고 있었다
왜 태어났을까 나는
어디까지 살면 될까
나는 가치를 어디에도
두지 않는 것이 좋았다
인터폰에 비치던 여자 아이의 모습
여자 아이는 굳고 닳아
없어지는 것이 두려웠다
본능적으로는 재생산에 힘썼다
혹은 시선받기 위해 애썼다
고독을 인정받을 수는 없다
길을 나서자
더 어두워지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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