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전체보기30 파고/ 안미옥 두 손은 먼곳에 있다. 울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너는 처음부터 모른다고 했다. 슬픔을 알지 못한다고 했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것을 알게 될 때까지. 슬픔이 숲에 가득 찬다. 숲을 보고 있다. 거대한 바위를 보고 있다. 바위 속에 있는 바위를. 바위 속에 있는 슬픔을. 씨앗을 꺼내려면 열매를 부숴야 한다. 웅크리고 앉아서 뭐 하고 있어? 그냥 혼자 있어요. 우리가 자주 하던 말 우리가 자주 듣던 말 너의 눈빛은 돌 같아. 바위 같아. 그 안이 다 보인다. 집 안에서도 비를 맞고 서 있었다. 흠뻑 젖은 내가 너에게는 보이지 않는다. 우리는 자라서 시체가 될까 제대로 말하는 법을 배우고 싶어 열차는 제시간에 맞춰 출발한다. 열차가 지나가면 우리도 지나갈 수 있겠지 각자의 목적지로, 반대 방향으로. 2020. 12. 6. 돌의 정원/ 안희연 아이가 찾아왔습니다 나를 열고 여긴 더 이상 식물이 자랄 수 없는 곳이라고 합니다 소매를 끌며 자꾸만 밖으로 나가자고 합니다 우리는 한 울타리를 넘어 처음 보는 숲으로 갑니다 보통의 숲이었는데 나무들이 함께 걸어가기 시작했습니다 올려다보면 아주 긴 목을 가진 사람처럼 보였습니다 흰 종이 위를 맨발로 걸어가 본 적 있니 앞이 안 보이고 축축한 버섯들이 자랄 거야 거기 있어? 물으면 거기 없는 여름 우리는 아름답게 눈이 멀고 그제야 숲은 자신의 호주머니 속에서 눈부신 정원을 꺼내주었던 것입니다 색색의 꽃들 아름다워 손대면 검게 굳어버리는 곳 아이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멀찌감치 익숙한 뒷모습을 가진 이가 보였습니다 아니 거기서 무얼 하고 계세요 왜 그런 굴러 떨어질 것 같은 얼굴을 하고 계세요 무심코 둘러보.. 2020. 12. 6. 다른 곳/ 채호기 나는 내 안으로 나 있는 돌계단을 내려갔다. 심장 소리가 거세게 고막을 두드렸다. 그곳은 언젠가 와본 것 같은 계곡이었다. 평범하고 흔해서 기시감을 주는 그곳에 나는 오래도록 서 있었던 것 같다. 나는 공기에 흩어진 채 나를 바라보다가 내가 숨을 들이마실 때 코를 통해 내 안으로 들어가 다시 내가 되었다. 내 발은 돌을 밟고 있다. 돌의 요철에 따라 종아리 근육이 긴장하고 있다. 나는 비스듬히 짝다리 짚고 흰 나무에 기댄다. 은사시? 자작? 나무 이름을 잠시 생각해본다. 잎이 잔털 보숭한 뒷면을 보이며 말한다. 듣지 못하는 나는, 바람이 부는구나, 생각한다. 나는, 한 그루 나무라면 좋겠다, 생각하며 나무 우듬지를 바라본다. 거기 바다 같은 하늘이 있다. 양쪽 산이 가파르게 솟은 계곡이라 여기는 바다 속.. 2020. 12. 6. 실존하는 기쁨/ 황인찬 그는 자꾸 내 연인처럼 군다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래서 그와 팔짱을 끼고 머리를 맞대고 가만히 오래도록 앉아 있었다 아는 사람을 보았지만 못 본 체했다 그래야 할 것 같았지만 확신은 없다 아파트 단지의 밤 가정의 빛들이 켜지고 그것이 물가에 비치고 있다 나무의 그림자가 검게 타들어 가는데 이제 시간이 늦었다고 그기 말한다 그는 자꾸 내 연인 같다 다음에 꼭 또 보자고 한다 나는 말없이 그냥 앉아 있었고 어두운 물은 출렁이는 금속 같다 손을 잠그면 다시는 꺼낼 수 없을 것 같다 2020. 12. 4. 이전 1 2 3 4 ··· 8 다음